[칼럼] 집 사지 말자 했다가...부동산이 불러온 가정불화

신혜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1.11.08 13:34 | 최종 수정 2021.11.08 13:35 의견 0
편집(이미지 더블클릭)
[사진=김유진 기자]


지난 4일 YTN 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에 아내가 가정폭력을 하는 것이 고민이라는 결혼 10년차 남성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는 “3년 전 아내가 당시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고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자고 했으나 대출금을 갚는 게 부담스러워 사지 않았다”면서 “현재 그 아파트는 3억 원이 올라 전세로도 들어가지 못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것이 화근이 된 것인지 아내는 A씨에게 ‘무능하고 재테크에 재능이 없으면서 내 말을 듣지도 않았다’라며 매일 화를 내고 때리기까지 했다. 이에 A씨는 아내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하고 싶다는 고민을 전했다.

가정폭력은 가해자의 성별에 상관없이 폭력이기 때문에 112에 신고하면 폭행, 상해 등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사연에서 현 대한민국의 씁쓸한 단면을 마주한 듯하다. 실제로 부동산에 관해 부부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데, 근 몇 년간은 집 사자는 쪽과 사지 말자는 쪽, 어느 쪽의 의견을 수용했는지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A씨와 유사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 걱정돼 집을 사지 못하고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유지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집값은 오를지 떨어질지 유지될지 알 수 없으나 전세는 원금이 보장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무주택자들이 최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오른 것은 물론이오, 집값과 함께 전셋값도 덩달아 올라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집에 거주하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무주택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눈높이를 낮춰 불만족스러운 위치나 평수로 이사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m²당 383만원 정도였다. 당시에는 이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해 전세를 택한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지금 집값이 고점이고 앞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주장하는 집값폭락론자들이 여기저기서 활개를 치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 전셋값이 m²당 평균 283만원 정도였는데 4년이 지난 올해 9월의 전셋값은 m²당 382만원까지 올라 2017년 아파트 매매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됐다. 만약 집을 샀더라면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추가 자금 없이 지금 살고있는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데 전세는 앞으로 더 오를 공산이 커 전세 난민 신세를 탈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전셋값은 집값 상승과 함께 자연히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때론 하락하기도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상향 추세를 벗어나지 않는다. 전셋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화폐 가치의 하락이라 할 수 있다. 전세 자금 대출로 자금이 계속 풀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택담보대출과 비교해 전세 자금 대출은 대출 한도가 많고 규제가 적다. 전셋값이 오르면 대출의 규모도 커져 외부 자금이 더 많이 유입되어 악순환을 일으킨다. 전세 시장을 안정화하려면 전세 자금 대출을 줄이면 되는데, 문제는 대출을 막는 순간 실수요자들의 자금줄이 끊겨 열악한 주거지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만약 전셋값이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원금을 지켰다고 하기 어렵다. 화폐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주거 수준은 떨어진 화폐 가치만큼 하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 있는 사람들의 자본은 점점 늘어나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2017년 하반기에 서울에 집을 샀던 사람이라면 현재 평균적으로 5억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두었을 것이다. 자산 격차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이 격차를 좁히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개인의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었던 시대와 영영 이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집마련의 의지가 굳건한 사람이라면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며 욜로족으로 전향하기보다는 다음 버스가 왔을 때 재빨리 탑승할 수 있도록 자산과 지식, 경험 등의 토대를 잘 다져놓는 것이 이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저작권자 ⓒ 주택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