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파트 불신 시대...부실공사의 민낯

신혜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2.02.03 20:58 | 최종 수정 2023.07.26 00:55 의견 0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1970년 4월 8일 오전 8시 경,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와우아파트 15동이 붕괴해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한국사회의 전시행정과 부정부패의 전형을 보여준 사고였다. 대한민국 고속성장 시기의 아픈 기억 중 하나다.

지난 2022년, 아파트가 붕괴되는 대참사가 또 벌어졌다. 지난 1월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단지 아파트 외벽이 무너졌다. 39층의 초고층 아파트로 오는 11월 입주 예정이었다.

수많은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한창 건설 중인 아파트의 일부가 무너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미 실상을 알고 있던 관계자는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이번 사고에 대해 “국내 건설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드문 유형의 사고”라며 “부실시공과 관리부실, 취약구조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발생한 건물을 보면 23~38층 사이 외벽과 구조물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는데 이는 콘크리트 양생 불량과 설계 구조상의 취약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콘크리트 양생이란 콘크리트를 믹싱한 후 경화하기까지 적당한 온도와 수분을 주어 충분히 경화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콘크리트 강도가 충분히 높아질 때까지 과도한 충격이나 하중을 주지 않는 것, 그리고 날씨 등의 외부 요인으로부터 콘크리트 노출 면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무게를 지탱하는 하부 2개 층의 콘크리트가 추운 겨울철 제대로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층을 쌓아 올려 거푸집이 무너지고 그 충격으로 건물이 순차적으로 붕괴했다는 것이다. 주말에도 밤낮 가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사를 진행했다는 현장 증언을 토대로 시공사가 건축 공기에 쫓겨 서둘러 콘크리트 타설을 하다가 부실시공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가 난 건물 옆 동에서 작업하던 한 목격자는 “닷새마다 1층을 쌓아 올린 것으로 보였다”고 증언했다. 또 “현장 소장이 서너 차례 바뀌었고 현장 작업자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숙련도가 낮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아파트는 흔히 쓰이는 벽식구조가 아닌 무량판구조로 건설 중이었다. 벽식구조는 벽체가 기둥 역할을 하여 구조물 전체의 강성이 우수하고 마감 공사가 단순해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상부 충격 소음이 바로 벽으로 전달돼 층간소음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무량판구조는 소음이 기둥을 통해 빠져나가 층간소음이 덜하고 내력벽을 제외한 벽을 철거할 수 있어 리모델링 시 구조 변경이 쉽다. 그러나 벽식구조에 비해 하중 부담이 커 부실시공 등 위험변수가 발생하면 사고에 취약하다.

안형준 전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붕괴 사고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한다”며 “최근에는 아파트 창을 크게 내기 위해 무량판구조로 설계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중을 받아야 할 벽이 하중을 받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둥이나 벽을 최소화한 설계 구조상의 취약점이 이번 사고의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시공 시 설치하는 갱폼이 무너지면서 외벽이 붕괴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사고 현장에서는 레일 일체형 시스템 공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갱폼을 유압으로 올리는 자동화 방식이다. 비용을 절감하고 공정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설비 자체가 무거워 대형 사고 발생 우려가 크다.

자재 부실도 건설사고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사고 당시 타설 중이던 콘크리트에 하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고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10개 업체 가운데 8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작년 6월 9일 광주 학정동에서 발생한 철거 건물 붕괴 사고도 작업을 맡은 건설사가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당시 재하도급 계약 구조가 큰 문제로 지적됐는데 이번 아파트 붕괴 사고에도 재하도급 정황이 포착됐다.

사고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맡은 업체는 HDC현대산업개발과 계약한 전문업체가 아니라 시멘트를 퍼 올리는 펌프카 장비 임대업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재하도급으로 대리 시공을 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들로 미루어 보아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는 ‘부실공사 종합세트’라 불릴만한 수준으로 많은 문제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사 강행, 부실 자재 활용 가능성, 시공능력을 갖추지 않은 영세업체에 불법 하도급 떠넘기기까지. 여기에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부실한 내부 시스템,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사회와 최대주주 등 지배구조에도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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